공부하자

블로흐의 유토피아, 통속소설

딜쿠샤 2010. 9. 2. 22:17

블로흐라는 양반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희망의 원리?(2004), pp.178~195, 743~749)

이른 바 ‘낮꿈’이라는 개념. 이는 프로이트의 ‘밤꿈’에 맞서는 그것과 전혀 다른 영역을 말한다. ‘낮꿈’ 속에는 어떤 지칠 줄 모르는 충동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고, 이는 이리 그려진 바람직한 상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낮꿈’의 4가지 특징. 1) 깨어있는 꿈은 그 자체가 답답함에 갇혀 있지 않으려는 욕구를 지니고 인간의 힘에 의해 좌우된다. 2) ‘낮꿈’ 속에서 인간의 자아는 의식적으로 살아있기에 자신의 실제 환경과의 관련성 속에서 머문다. 3) ‘낮꿈’은 다른 자아들과 함께 공동적으로 세상을 개혁하고 향상시키려는 특징을 지닌다. 4) ‘낮꿈’은 깨어있으므로 개방된 꿈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체념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수긍한다.

블로흐의 이러한 ‘낮꿈’ 개념은 그의 현실 개혁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유토피아 상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여기서 블로흐가 이러한 미래 지향적인 유토피아 상을 찾아 발견해내는 대상이 이른바 통속소설에서이다. 이 대목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통속소설은 현실 이데올로기에 봉합되거나 추수하거나 거기로 도피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블로흐는 이러한 통속소설에서 미래 지향적인 유토피아 상을 발견해낸다.

그에 따르면 통속문학 속에는 ‘동경’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들이 눈부시고 속임수를 지나고 있으며 값싸고 불규칙적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진정한 통속소설은 거칠고 황량한 세계의 질곡으로부터 탈출하는 일을 목표로 삼고, 가장 합법적인 갈망의 상을 문학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속소설에서 긍정해야 할 것은 그것이 가지는 <전투적 낙관주의 성격>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루어진 무엇’ 속에서 항상 ‘어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무엇’으로 향해 그리고 빛의 친척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향해 방향을 설정하고, 따라서 이는 결코 제외될 수 없는 경향성을 예리하게 파악함으로써 생기는 자세를 견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블로흐의 통속소설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은 통속소설의 현실 추수적인 측면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으로 주목할 만하다. 더 공부해볼 일이긴 하지만, 그가 말하고 있듯이 그 ‘탈출’이 “가장 합법적인 갈망의 상”이라는 대목이 문제적인 것 같다. ‘합법적’이라는 조건이 블로흐 자신의 개념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중문화에 내재하는 유토피아의 속성에 대한 재평가의 관점이 이론가들에게서 확인된다. 수잔 벅 모스나 프레드릭 제임슨 등의 ‘유토피아’ 개념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리라.

여하튼 대중문학에 대한 새로운 독해에 ‘유토피아’ 개념은 한 중심점을 점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