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시인추방론과 오해
1. 플라톤의 이데아론
■ 形相론(이데아론)
형상이란 영원한 패턴이며 우리에게 보이는 대상들은 단순한 모사들에 불과하다. 형상들은 영원한 존재를 가지며 감각에 이해서가 아니라 정신에 의해 파악되는 사물의 본질적인 원형이다. ‘무색·무형의 만질 수 없는 실재적 존대’를 바라볼 수 있는 정신이기 때문에 형상은 ‘지(知)를 통해서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비물질적인 형상이 위치를 가질 수 있을까? 플라톤은 형상들이 구체적인 사물과 ‘떨어져’ 있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가 보는 사물로부터 ‘분리되어’ 존재한다. 형상들은 차원을 갖지 않는다.
형상과 사물의 관계: (1) 형상은 사물의 본질의 원인이다. (2) 한 사물은 하나의 형상을 분유한다. (3) 한 사물의 하나의 형상을 모방(모사)한다. 플라톤은 인간의 이데아는 모근 구체적, 현실적 사물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존재를 형상에 의탁하고 있으며 형상을 어느 정도 모방하거나 모사한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부분을 비판하게 되는 데, 실적인 사물들과 분리된 형상의 존재를 설명하는 어떤 일관된 방식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그것이다.
플라톤은 “우리는 형상들을 함께 엮음으로서만 언동을 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언어는 형상과 형상을 관련시키는 일을 한다. 형상에도 위계질서가 있는 바, 특정한 경우들과 특정한 사물들로부터 독립성을 획득하는 것일 때 최고 형태의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정신이 형상을 발견하는 방식 3가지를 제시한다. (1) 상기(想起)의 방식: 영혼은 육체와 결합되기 전에 이미 형상과 친숙했다. 따라서 인간은 정신이 존재의 선험적 상태에서 인식했던 것을 상기한다. (2) 변증법의 방법: 인간은 변증법적 활동을 통해 형상의 인식에 도달하게 되는데 변증법이란 사물의 본질을 추상화하는 힘이며 지식의 모든 부분들의 상호관계를 발견하는 힘이다. (3) 갈망의 힘(에로스-사랑): 인간을 아름다운 대상으로부터 아름다운 사유에로 더 나아가 미의 본질 그 자체에로 단계적으로 나아감. 플라톤에게 ‘대화’술은 우리를 형상으로 이끄는 단서이다.
可知界(Intelligible World)
수학적 대상(Mathematical objects) ㅣ 사고 작용(Thinking) : 추론지, 間接知
사물(Things) ㅣ 신념(Belief) : 신념, 소신
허상(Images) ㅣ 상상(Imagining) : 상상
可視界(Visible World)
* 허상 : 세 가지 실재의 수준 1) 인간의 이데아, 2) 이 이데아의 박정희로의 체현, 3)화폭에 표현된 박정희의 허상. 플라톤이 예술에 대해 비반한 것은 예술이 허상을 산출하며 허상은 곧 목격자의 환상적 관념을 자극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시(詩)와 수사학은 가장 심각한 환상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환상은 허상을 실재적인 어떤 완전한 것으로 이해하려 할 때 생긴다. 그리고 상상은 허상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를 의미하므로 이 역시 환상이나 무지와 마찬가지다. 허상, 상상의 개념을 바탕으로 다음에서 이른바 ‘시인 추방론’을 살펴보자.
2.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
“결국 예술이란 가상의 가상, 그림자의 그림자란 얘기 아닌가? 이렇게 예술은 진리의 세계에서 두 단계나 떨어져 있는 거라네. 알겠나?”(?국가?)
시인은 진리를 알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사물에 대하여 오로지 모방을 일삼는 자로서 진리에서 두 단계나 떨어져 있으며 이성적 생활을 저해하는 연민・두려움 따위를 최고조로 북돋우는 죄를 범하는 자이므로 이상적 사회(이데아 왕국)에서는 추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는 형이상학적 원칙에 의하여 시의 무가치함을 ‘증명’한 것이다. 플라톤은 세 가지 신성모독적이라는 종교적 근거, 인간 교육에 해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사람들을 부패 타락시킨다는 도덕적 근거, 사물들에 대한 허위적인 생각들을 제시하여 올바른 행동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형이상학적 근거를 들어 시인들을 ‘국가’로부터 추방시켜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플라톤은 시와 다른 예술들이 자신의 제목이 잘 정비된 국가 안으로 허용되어 들여짐을 입증할 경우에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그것의 매력을 높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어 기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때문에 진리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플라톤은 미적인 감각까지 무조건 배격한 것은 아니라고 말 수 있다.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은 당대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고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당시 소피스트들이 호메로스를 비롯한 과거의 시인들을 주로 말 잘하는 법을 가르친 옛 스승으로 떠받들고 헬라의 청년들에게 그들의 수사법을 가르치는 일로 큰 성과를 얻고 있었다. 헬라문화의 전성기를 이루던 당시에 청소년의 올바른 교육방법에 대한 논의가 상당히 중요하였는데 수사학은 종래의 다소 전통적인 방법에 대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고 소크라테스의 변증법에 의한 철학도 새로운 교육방법으로 부상하였다. 결국 수사학과 철학이 대결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던 때이다.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은 결국 시를 교육적으로 이용하여 인기를 누리던 당대의 수사학자-소피스트들과의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논쟁 끝에 플라톤이 승리하였지만 시에 대해 제대로 변호하기 위해 시인이나 수사학자-소피스트도 아닌 철학자가 나서야 할 처지였지만 하필 아리스토텔레스였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데가 있다.
정리하면 플라톤이 추방하려고 한 시인은 ‘타락한 시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플라톤 당시의 시(혹은 드라마)는 이미 전성기의 역능을 상실하고 타락한 형태로 전락한 것이었다. 폴리스의 쇠락과 맥을 같이 한 것이다. 드라마가 탄생한 맥락은 페르시아 전쟁의 승리의 벅찬 감정을 밑그름 삼아 인간의 운명을 그리게 된 데에서 출발한 것으로 장엄미, 비장미가 핵심이었다. 하지만 그것의 타락은 플라톤에게 젊은이들을 망치고 폴리스를 섞게 만드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러한 드라마를 쓰는 작가는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얘기한 것이다. 우리 시대의 상황으로 이해하면, 드라마가 본질적 기능을 잃어버리고 이른바 ‘쇼쇼쇼’ 같은 식이나 엽기적인 것으로 변질하게 된 상황, 그래서 젊은이들을 망치고 국가(사회)를 썩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드라마를 쓰는 사람들은 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을 지금으로 말하면 ‘연예인 추방론’쯤으로 이해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