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라>와 <-다>
<-더라>는 직설과 구분되는 회상의 화법. 회상이란 시제상 과거 지향을 함축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화자의 경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일을 지시함을 뜻하는 말이다.
1. <-더라>체 우위는 서술자가 모든 일을 이미 알고 있는 존재로서 발언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 서술자는 일종의 집합적 화자, 즉 집단적 경험의 축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설화적 세계의 존재이다.
2. 시간성의 표지가 없는 어미. 모든 가능성을 통찰하고 있는 서술자에게 시간은 본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미래는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서사는 정해진 결말을 향해 차근차근 진행될 뿐이다. 시간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의 근원이 아니라, 불변의 원리를 드러내는 장치이다.
3.. 1인칭 화자와의 불화. <나는 -더라>는 성립하지 않는다. 서술자 '나'로서 시공간적 제한을 할 때에는 쓰이기 어렵다. (권보드래, 235-255)
4.. <-더라>체 종결어미의 서술자는 현실의 시공간에 자리잡기 어렵다는 점에서 '현실'에 존재하는 객관적 관찰자일 수 없으ㅕ, 따라서 현실의 풍경을 바라보는 관찰자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을 드러내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내면'을 드러내는 자기고백으로서의 근대소설에 적합하지 않은 문제.(이지훈, 26면)
<-다>체는 구체적 묘사라는 새로운 권역에 대응하는 언어의식.
1. 금강산인, <조선 신문투에 대하야>(매일신보, 1920.07.17) : 1920년대 새로운 종결어미에 대한 실험이 활발해질 때 보이는 주장.
- 글이 말의 표현이어야 한다면 상대에 따라 어투를 조정해야 하고, 불확정 다수를 대상으로 할 때 당연히 경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
- <-다>체를 일상에서 상용할 때는 이 주장이 맞다. 명백하게 하대의 말투이므로. 그러므로 엄격한 의미에서 <-다>체는 규범적인 문체, 언문일치의 문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권보드래, 243-244)
2. 인공어로서 <-다>체: 실제 구어의 세계와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언문일치의 문체로 주장되고 나서야 실천될 수 있었다는 의미. 일상어에서는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의 흔적 자체를 지우려 한 문체로서 <-다>체. 무색투명한 문체, 일상어의 존대 체계를 떠난 새로운 언어의 질서야말로, <-다>체의 목표.(244)
3. 서술자의 초월적 성격이 지워지고 단순한 관찰자로서의 면모가 부각되는 순간, <-다>체는 출현할 수 있는 것.
4. 고립된 개인의 언어로서 <-다>체. 누구에게도 말걸 수 없고 누구의 위안도 받을 수 없는, 단지 스스로 독백을 뇌까리는 개인의 문제. 여기서 '내면'이 핵심적인 문제영역이 되는 것. 독백으로서의 말하기, 독백으로서의 글쓰기에서 <-다>가 하대의 말투라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으며, 나 자신과의 관계를 제외한 모든 관계가 배제된 다음이라, '관계'의 문법을 새삼스럽게 끌어들일 이유가 없는 까닭. <-다>체는 자기 자신에게 건내는 발투, '듣는 상대자를 알은곳없이 사물에 대한 자기 단정을 나타내'는 말투이고 따라서 존재 혹은 하대의 '관계'를 지울 수 있는 문체인 것.(248)
5. 공표의 언어로서 <-다>체. 독백이되 만인 앞에서의독백. 읽는 이가 '내면을 엿본다'는 느낌을 맛보게 만든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차단한 상태에서 토로하는 내면, 그 미지의 사유지를 넘겨보는 듯한 인상을 갖게 해 주는 것.
"한국 근대의 '소설'이 개척한 땅은 바로 이곳이었다. 현실에서야 개인의 내면은 누구도 확실하게 짚을 수 없는 것이지만, 소설 속에서라면 내면은 널리 공감할 수 있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정연하게 선후가 설명되고, 사고와 감정의 굴곡이 세세하게 제시되며, 모든 사연이 '일ㅆ을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로써 소설은 현실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일, 다른 존재에 대한 완전한 이해라는 사선을 이룩한다. 실상 '나'의 깊이조차 재지 못할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인상을 빚어낸 것이다."(252)
6.. 신소설에서 <-다>체가 잡리잡은 것은 이른 것이지만, 10년이 지나서야 신문 잡지 등에서 <-다>가 일반적으로 쓰이게 됨,
신문 잡지에서 <-다>체: 1) 다른 사람의 말을 전할 때 쓰이기 시작하여 기고문의 문체로 번져감, 2) 기자 자신의 일반적인 문체로 자리잡음.
7. 이 과정에 '그'와 '그녀'라는 대명사의 출현의 의미. 고립된 개인의 자리에서 출발한 소설, 이 소설이 전제하고 있는 통찰이 얼마나 현실적인 것으로 각인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서, 과거시제가 요청되는 것. <-었(았)다>체는 2개의 시점을 전제로 하는 것. 과거의 시점이 언제나 현재화되는 것. 이 종결어미의 서술 속에서 과거의 시간이 끊임없이 현재화된다. 소설 속의 사건은 서술이나 독서라는 행위를 통해서만 현실화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현실성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것. 과거시제로 서술되는 사건은 결말의 순간에 있어서조차 늘 이후의 시간대에 유보되어 있다. 사건은 끝난 듯 보일지라도 근본적으로 미정의 상태이며 언제라도 다시 문제될 수 있다. 시작과 끝을 모두 완벽하게 보여주겠다는 욕심은 이제 설 자리가 없어진 셈. 사건은 현실 속으로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현재속으로 이월된다. 소설은 과거-현재-미래라는 흐름을 전제한 글쓰기. '허구'가 '사실'보다 일층 현실적이고 개인의 내면에 대한 온전한 이래라는 비현실적인 사건이 '현실'오서 제시되는 새로운 글쓰기의 공간이 구축된 것이다.(25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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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보도문 기사의 <-더라>체 1920년대에도 여전히 쓰임.
2. 소설의 서술차원에서 확인되는 정보전달 혹은 사건 전달의 방식과 보도 기사체와의 차이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