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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급조>(제일선, 1933)

딜쿠샤 2013. 2. 26. 13:37

생활을 위해 소설을 급조하는 자신의 모습을 희극적으로 그리면서, 그는 '자기의 소설'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어떤 가정잡지에 단편을 쓸 것을 약속한 주인공 k는 약속한 날이 되어서도 쓰지 못한 채 신문사에서 받은 원고료를 밤새 마작으로 써 버리고 신혼의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괴로워하면서 하루종일 거리를 헤맨다.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용서를 빌고 자리에 든 k는 이튿날 아침 9시에 일어나서 9시 반에는 신문연재소설 1횝ㄴ을 끝내고, 30분 휴식한 뒤 붓을 들어 정오까지 단숨에 써낸다. 그것은 소설가 k가 소설을 급조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단편이다. 빈정거리는 투로 이 소설이 나오기까지의 경위를 소설화했던 것이다.

 자신을 비하하고 있는 듯한 희극적인 터치로 쓰여진 작품이지만, 거기에는 매우 분주한 일일지언정 붓 한 자루로 생활애 나갈 수 있는 재능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저널리즘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의 조선에서, 문필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김동인은 <문단 30년의 자취>에서 "붓 한 자루만으로(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생활을 한 인간은 나 혼자밖에 없다"고 적고 있다.) 신문사나 잡지사로부터 일을 대량으로 떠맡은 김동인에게 젊은 작가드로부터 일을 독점하고 있다는 비난이 일었을 정도였다(안회남)고 한다.

 

'신문에는 신문소설'

'잡지에는 잡지소설'

 이것이 k의 모토이었다. 매달의 정기 수입을 위하여 신문에 소설을 싣는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소설이 아니었다. 신문이 주문하는 대로 베끼어 나아가는 한 기사에 지나지 못하였다. 신문의 경제 기자가 봉급을 위하여 쓰는 경제 기사와 가찬가지로 그는 신문에 있어서는 소설 기자로 자임하였다. 봉급을 위하여 쓰는 글이지 자기의 소설이 아니라 공언하여 문제를 일으킨 일까지 있었다.(조선일보 전집3, 161면)

 

 "붓을 잡기만 하면 그래도 어름어름 남의 눈을 넉넉히 속이어 넘길 만한 것을 급조할 자신은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k가 소설을 쓰지 못하여 괴로워하느 이유는 게재할 곳이 가정잡지이긴 해도 잡지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는 그대로 김동인의 자세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주목되는 것은 이 시기 김동인이 생활을위해 소설을 쓰는 한편, '자기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예술적 의욕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중에 김동인은 신문연재소설을 쓰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면서, 털의 깨끗함을 아끼는 나머지 역으로 조금이라도 털을 더럽히면 함부로 뒹굴어 전신을 드럽히는 백초(흰담비, 족제비과의 산짐승)에 자신을 비유하고 있다.(161면) 그러나 실제로는 신문연재소설을 쓰게 된 후에도 '자기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의욕을 계속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타노 세츠코, <[광화사] 다시 읽기-새로운 해석의 가능성 및 이미지의 원천에 대하여>, 최주한 역, <일본 유학생 작가 연구>, 소명 , 2011. pp.445-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