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쿠샤 2006. 5. 21. 00:56

<할미꽃>

         정병근

 

땡볕 속으로 너를 데리고 갔다

너의 생식기에 넣었다 뺀

꽃잎을 코끝에 갖다댔다

 

매독처럼 머리카락이 뭉텅뭉텅 뽑혔다

뽑힌 머리카락을 뭉쳐 손바닥으로 비볐다

까만 씨앗들이 둥근 테두리 밖으로 밀려나왔다

 

하늘을 쳐다보지 마라

눈뜨지 마라 생각도 하지 마라

 

자주색 비로드 치마를 털며

너는 부드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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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털을 덮어쓴 소녀의 단발이

어느 미친년의 다닳은 사리빗자루같은 머리칼로 바뀌는데는

앉은뱅이 바위옆에 앉았다 일어섰다를 두번 하고 담배 두대 피는 시간이면 충분했다.

이렇게 여느 해와 다름없는 봄날은 갔다.

내 유년시절의 외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할미꽃.

뭉텅뭉텅 빠져 흩날리는 그 머리카락은 죽음도 아무것도 아닌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