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하루

휴가 그리고 <알로에 마을>

딜쿠샤 2006. 7. 30. 10:16

휴가 때 뭐하세요?

이렇게 묻는 여선생님에게 할 말이 없었다.

지독하게 미루어두었던 원고 쓰느라

남들 휴가라고 말하는 그 기간 동안 끙끙 대겠지.

속으로 생각만하고 웃었다.

 

보충 수업을 한 지 꼭 반이 지났다.

그간 실망과 허탈함으로 하루하루 보냈다.

학생들의 반응은 나를 전혀 자극 주지 못했다.

강의에 관심에 없는 학생들을 끌어내어 집중시키지 못하는

내 능력에 회의도 들었지만

불만은 내내 학생들에 향해 있었다.

아마 마지막까지 이 마음은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알로에 마을>. 자판기 캔 음료수의 이름이다.

하루는 오전 쉬는 시간에 내가 있는 학생부실 복도를

두리번거리는 한 여학생이 나를 보자마자 나를 기다렸다고 말한다.

수줍게 이 캔 음료수를 내게 내민다.

"어제 고마워서요."

라는 한 마디가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사연은 이렇다.

어제 방과후에 학생부실에 학부형 몇 분이

어느 선생님과 상담(?)을 나누고 계셨다.

상담이라기보다는 학부형이 선생님께 혼나고 계셨다는 게 맞을거다.

학부형은 언제나 선생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지 않는가.

아무튼 민망해서 퇴근을 서둘러 하던 나는

그 선생님의 한 마디 말을 듣는다.

"글쎄, 둘이서 포옹을 하고 한 참 그렇게 길거리에 서 있지 않겠습니까."

학생부실을 나와 보니 복도엔 이쪽 저쪽에

여학생 하나 남학생 하나가 멀찍이 떨어져

무릎 꿇고 앉아 반성문을 쓰고 있지 않겠는가.

나는 순간 내 속의 장난기였는지

그러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 대한 애처로움 때문이었는지

바로 앞의 여학생에게 다가가 한 마디 하고 만다.

"힘내, 사랑하는게 이 뭐 죄냐. 더 진하게 사랑하세요."

이게 끝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이렇게 그 여학생이 내게 <알로애 마을>을 건낸다.

"어제 그렇게 복도에 있는데 지나 가시는 선생님들 모두 혼만 내셨어요.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너무 고마워서요."

눈물까지 글썽이는 여학생(학년과 이름을 물어보았다. 3학년이란다).

힘든가보다. 나는 이 여학생에게 판에 박힌 인사밖에 해줄 수 없었다.

"고3이니까 공부도 열심히 하고, 사랑도 더 찐하게 하세요. 힘내세요."

수업을 시작하는 종이 울리고

여학생은 그렇게 바삐 사라졌고 나는 다시 1학년 수업을 하러간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저런 말로 학생들에게 내가 유능한 강사인 척 하려했던 게

부끄러워 졌다.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실력 운운하는 게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선생님은 강사가 아니지 않는가.

쓸쓸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부끄러워지자

더 뻔뻔해지는 내 모습을 보며 학생들과 눈을마주칠 수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