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생각하기
주병률의 <이별>
딜쿠샤
2007. 1. 1. 01:35
이별
주병률
겨울 벚나무 아래서 이별을 했다.
그 남자 너무 오래 서서 울었다.
강둑에 기댄 마른 갈대의 아랫도리는 붉고
강물은 덤벙덤벙 깊이를 알 수 없이 흘러갔다.
빙하의 얼음판을 조심스레 건너왔던
지난 시간도 함께 몇 장의 붉은 나뭇잎으로 흘러갔다.
흘러가면서 그것들은 서로 얼음이 되었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지는
얼음의 흐느낌도 마저 듣지 못하고
밤은 이미 너무 깊어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벚나무 가지에서 휘파람 소리가 났다.
사람의 마을로 가는 길은 모두 모래가 되었다.
-시집 <빙어>(천년의시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