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자

소설가 전성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

딜쿠샤 2008. 12. 23. 14:52

전성태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

 오늘 연구실에 뒹굴고 있는 이번 겨울호 󰡔�서평문화󰡕�라는 책자에서 전성태의 서평 한편을 만났다. 기다리는 소설이 아니었지만 반갑기는 한가지였다. 읽은 것은 서평인데 나의 관심은 오로지 전성태의 지금 처한 내면풍경이었다. 그 내용을 정리한다.


 -<전성태, 중국현대사를 횡단하는 장엄한 입심-모옌, 이욱연 역, 󰡔�인상은 고달파(1·2), 󰡔�서평문화󰡕�72, 2008.겨울>을 읽고.. 

 

 “나는 1980년대 말에 소개된 -중략- 몇 편의 중국 근대소설을 아주 흥미롭게 접한 독자의 입장에서 긴 간극을 두고 새로이 출현한 작품들을 대하는 감회가 남달랐다. 전자의 소설들이 그린 새로운 사회건설을 향한 열정에 불탔던 중국 인민들이 도대체 그 후 어떤 사회를 만들고 어떤 삶을 영위했는지 후일담에 대한 갈증이 컸는데, 모옌과 같은 젊은 작가들은 그 간극을 가로지르며 당대 중국 인민들의 삶을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43)
▶  밑줄 친 부분은, 작가 전성태가 처한 지금의 내면 풍경에 값하는 대목이다. ‘새로운 사회건설을 향한 열정’의 그 뒤의 이야기에 대한 ‘갈증’, 그것은 한국현실의 사정에 처해 있는 작가의 ‘구조요청’에 다름 아니다. 전성태는 한국에서 80년대 꿈꾸었던 ‘열정’을 지니고 90년대를 통과해내면서 작품으로 반응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더 구체적으로 지금 현시점에서 그 후일담을 더 담아낼 수도 없고, 세상은 뜻과는 다르겠지만 바뀌었고 그 바뀐 세상에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독특한 서술방식을 빼놓고는 이 작품을 말 할 수 없다.” “모옌은 창작기법상 시점 선택에 심혈을 기울이는 작가이다. 이 소설의 경우 50년이라는 긴 시간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이끌어가기 위한 서사전략으로 윤회라는 불교적 상상력을 활용했다.”(44) “윤회 모티브 자체가한 편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어 흡인력을 더 하여, 만담가나 전기수처럼 소설 곳곳에서 화자가 독자에게 ‘친애하는 독자 제군’하고 직접 말을 건네 호흡을 가다듬기도 한다. 형식에 거침이 없을 만큼 장쾌한 화법이라고 할까. 마치 이야기를 듣는 청자들 속에는 돼지나 개도 함께 앉아 있을 것만 같다. 어쨌든 모예은 전통서사를 풍부하게 활용하여 중국식 혹은 동아시아적 서사양식을 실험하는 데도 공을 들인다.”(44)
 ▶ 전성태가 서평을 쓰기 위해 선택한 소설 그리고 그 소설에서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부분의 서술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소설의 형식에 대한 것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전성태가 「존재의 숲」과 어느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는 “민중적 환상성”의 개념에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어떤 형식의 소설을 쓸 것인가? 그 형식에 담겨지는 내용은 당연히 형식에 따르는 것일 것이다.

“모옌은 일찍이 ‘소설가의 창작행위란 역사의 복제가 아니며, 역사의 복제란 역사가의 임무’라고 일갈한 바 있다. 그가 소설에서 주목하는 것은 역사 자체이기보다 역사의 소용돌이를 뚫고 살아가는 인간의 삶이다. 왜곡된 영혼과 상처 입은 인간성에 대한 탐구가 모옌 문학의 고집스런 주제이다. 그에게 중국 현대사 반세기는 20세기 인류의 실험장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소설의 미덕은 각 인물들이 역사라는 엄중한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제 운명껏 목소리를 낸다는 점일 것이다. 그건 때로 자연주의자의 시선처럼 냉혹하고 그로테스크하기도 하지만 삶의 속살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봐라, 삶은 이런 것이다! 모옌은 분명 대륙적인 입심을 타고난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중국적인 허풍과 과장, 기상천외한 상상력은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 위로 가볍게 미끄러지게 하지만 정작 독자가 둔중하게 깔아뭉개고 앉은 것은 가시 돋힌 삶이다.” “과장과 허풍으로 빚어진 해학성은-중략- 중국소설의 트랜드”이기도 하며, “소설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런 창작방법은 문화대혁명과 같은 비극적 역사를 전달하는 데에 더없이 유력하지만 복잡다다한 자본주의적 삶들을 묘파해내는 데는 힘이 부쳐 보인다.”(46-47)
 ▶전성태가 모옌 소설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역사라는 엄중한 현실에 발을 디딘” 인물들의 “삶”과 그것의 속살까지 보여주는 점에 있다. ‘역사’, ‘인간들의 삶과 목소리’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 이것은 전성태의 소설관이기도 하다. 중국의 현실만큼이나 더 파란만장한 ‘역사’의 굴레 속에 살아온 한국 민중의 삶을 이렇게 날것으로 보여주기 위해 전성태는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보편성과 특수성의 측면을 내재한 한 항목이 바로 ‘복잡다다한 자본주의적 삶’이라고 보고 있다.
 전성태는 지금 모색 중이다. 그간 그가 보여준 ‘해학의 정신’, ‘역사·현실과 밀착된 삶’, 그리고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최근에 보여준 이른바 ‘국경을 넘는 일’의 세계. 거기에 고민하고 있는 새로운 방법론으로서의 ‘환상성.’ 전성태의 이러한 모색의 기본 방향은 명확하다. “지나치게 익숙한 현재적 삶을 좀 더 낯설면서도 핍진하게 조명할 수 있는 시야의 확보”(47)가 그것이다.


*** 덧붙여 전성태의 창작방법론으로서의 ‘환상성’의 개념을 정리해놓는다.
 전성태는 “여러 사람이 공유한 기억을 옷으로 입은 언어들로 충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하면서, 소설의 “환상성”이라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는 환상성을 “현실을 재구성하는 방편으로서 서사 전략”이라고 하면서 “환상이 내포한 의미망이 실화의 한 대목이 내포한 의미를 못 넘어 서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환성의 서사가 제대로 구현되려면 “여러 사람의 입을 빌어 한 목소리에 이른 언어”로 씌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서 ‘여러 사람의 입을 빌어 한 목소리에 이른 언어’라는 관점에 서게 되면 여타 다른 ‘환상론’과는 구별되는 전성태만의 ‘환상론’의 관점이 성립되는 것이다. 즉 그의 환상관을 작동시키는 기저에는 ‘모두의 기억’을 공유하는 언어관이 내재해 있으며, 그것은 ‘민중의 언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환상이 모두의 기억으로부터 탄생할 때 비로소 진실에 가까운 언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전성태의 이러한 환상론은 “소설 안에 구축되는 현실에 맞서기 위한 환상성”, “다성적인 목소리의 결과, 그러니까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에서 나온 환상”, “현실처럼 끌어 안고 있는 이야기, 현실의 일부로서 환상”이라는 방법적 모색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성태의 환상론은 “사회적 상상력의 폭 넓히기”의 방법론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러한 모색의 방향성은 남미 문학의 환상성으로 나아가기도 한 것이다. 물론 아직 이러한 방법론에 의한 창작을 본격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 󰡔�문예중앙󰡕�에 연재하고 있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정리하고 있는 수필들을 읽으면서, 나는 기다린다. 그의 환상론이 그러한 유년시절의 복원에 있어 그 곁에 민중의 언어로 담겨 있는 <민중적 환상>을 길어 올려 곧 소설로 보여줄 날을. 매번 여러 계간지를 펼치며 전성태의 소설을 기다린 것도 벌써 몇 해다. 이제 때가 곧 올 것 같다.   
2008.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