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희 <저기압>(조선지광, 1926.10) 리뷰
1. 신문기자 주인공 소설
첫번째 단락:
"생활난, 직업난으로 수년을 시달려 왔다./ 이 공포 속에서도 가엾은 생활-무위한 생활로부터 흘러나오는 권태는 질질 흐른다. 공황의 한 재를 넘으면 권태. 또 한 재를 넘으면 권태."로 시작하는 소설.
"이게 다 무슨 생활이란 것이냐? --- 네가 참으로 생활다운 생활을 하려면 지금 네 생활을 저렇게 값없이 만드는 현실-그 속을 정면으로 파고 들어가서 냅다 하번 부딪쳐 보든지 어쩌든지."라는 고민.
= 현실에 정면으로 파고 들어가기라는 삶의 지평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삶의 길항을 소설 서두에 '폭백'의 형식으로 제시하고 시작하는 소설.
두번째 단락
신문기자인 '나'는 "십 년 만에샤 능참봉 하나 얻어 걸렸다'는 격으로 신문 기자라는 직업을 겨우 얻어 가지고 '이제는 생활 걱정의 짐은 좀 버벗으려니' 하였으나 , 또한 마찬가지로 생활난은 앞에 서서 가고 권태는 뒤서서 따른다."
*신문사 풍경: 편집실 - 고슴도치 혹은 장방울 같은 경리부원, 땟물 벗은 귀족-자작이나 남자의 지위쯤 되는 도야지 정치부장. 네모난 상자 속 같은 이 방 안. '수채에 내어던진 썩은 콩나물 대가리 같은 것들', "이 시대 이 사회는 수체일까? --- 더구나 이 신문사 안이---."
기발한 경우 기특한 일을 하게 될 때는 썩은 콩나물 대가리가 아니고 펄펄 뛰는 훌륭한 창조, 아니 인간이 될 것이다.
= 신문사의 역할 혹은 기능에 대한 언급: 나아가라, 자유, 평등을 위해, 앞으로! 할 때면 갠 하늘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신문사 안에는 권태가 흐르고 있다. <여기에는 생활이 없다. 생활의 기초적 조건이 되는 경제가 사회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파멸이 되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다른 생활도 파멸이 되었다는 말이다./이 땅의 지식계습-외지에 가서 공부깨나 하고 돌아왔다는 소위 총준 자제들 나아갈 길은 없다. 의당히 하여야만 할 일은 할 용기도, 힘도 없다. 그것도 자유롭게 사지 하나 움직이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런 가운데 뱃속에서는 쪼로록 소리가 난다. 대가리를 동이고 이런 곳으로 디밀어 들어온다. 그러나 또한 신문사란 것도 자기네들 살림살이나 마찬가지로 엉성하다.
**** 소설의 전반부는 결국 <의당히 하여야만 할 일>을 할 수 없는 지식인 계급이 처한 현실에서 느끼는 권태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신문사'라는 공간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사건의 실마리조차 소개되지 않았다. 그 다음 이어지는 사건이 이 에필로그의 서사화일 터. 권태로운 생활에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가?
소설의 세번째 단락: 오늘 아침 집에서 치른 시덥지 않은 연극. 4달치 집세를 내지 않았다고 새로 이삿집을 들고 이사들어옴. <소위 교양있는 문화인이라는 가면 아래에서 이 인조 병신은 속을 꿀꺽꿀꺽 참"음. 결국 집주인 노파와 아내의 싸움. 세끼 울음 소리. 어머니의 걱정 소리, 아수성판인 집을 나옴.
이 아침에 치른 아우성판에 대해, 나는 '연극'이라고 여기고 있음이 주목. "이것도 권태를 조화시키는 한 흥분제인가?"라며 이 사건을 인식함. 처음에는 가난조차 훌륭한 체험이요 정신상의 무엇을 얻는 것도 같다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몸과 마음이 까부러져 갈 뿐이다.
= 지식인들의 사회 진출 혹은 사회적 삶의 지평이 차단된 상황을 '권태'로 여기는 경우는 이 시기 소설에서 많이 확인된다. 이 권태 속에 '흥분제'를 찾고 있는 심리는 무엇인가? 권태/흥분제의 양면. 이석훈 <직업고> 참고.
네번째 단락: 석 달만에 탄 월급 30원. 주인이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집 식구들의 꼴이 떠오르고 '내 육신과 정신을 뜯어먹는 이 아귀들!'이라고 염오증을 느끼며, '종로를 향하여 꺽어서 걸음. 내 가슴 속에 얼마나 튼튼한가 좀 시험하여 보자는 심리로 술마시러 감.
다선번째 단락: 이튿날 아침. 술 마시고 집으로 들어가다 술 마시고 남은 돈으로 쇠고기 두 근, 쌀 한 말, 아이 과자 사들고 들어감. 아내 왈, 쌀은 적게 사고 고기를 많이 샀는지 기쁜 낯으로 묻고 아이도 활기를 얻어 뛰논다. 모두들 고깃국을 잘들 먹는다. 이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멜랑콜리한 기분에 싸여 갑갑한 가슴을 안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날씨까지 후텁지근하고 사람들도 후줄근 한 거리. "갑갑하다!" "이 거리에, 이 사람들 위에 어서 비가 내리지 않나! 어서.."라며 소설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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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문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은 부분적으로 확인될 뿐이다.
2. 권태/흥분제가 갖는 지식인 계급의 의식 분석
3. '저기압' 사회 풍경이 '신문사'에까지 드리워져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