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운다는 것의 의미?
사르트르가 존재와 무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자문해 봄으로써 그 본질에 도달해보자.
그에 의하면 흡연은 <파괴적인 소유 행위>이다. 내가 담배를 피움으로써 세계가 내 속으로 흡입되며 그럴 때 나는 세상을 단지 보고 듣고 만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소유하게 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으나 결코 내 것이 아닌 이 견고한 세계를 담배를 태움으로써 내 것으로 전환시킨다. 왜냐하면 내가 그 견고한 세계를 연기로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곧 사물을 통해 세상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풍경은, 내가 그것을 나의 어떤 내밀한 행위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는 데, 가령 담배를 태워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그러한 소유의 상징인 것이다. 이러한 것은 풍경에만 국한되지 않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내가 행하는 모든 것에도 해당된다. 내가 산책하면서, 혹은 무얼 먹으면서, 아니면 말할 때나 책을 읽을 때 담배를 태우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산책이나 식사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말하자면 결국 나는 온 세상을 태워 파괴함으로써 그것을 내 속에 흡입하려는 것이며 또 내 소유로 삼으려 하는 것이다. -中略-
이렇게 볼 때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다른 행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에 부여되는 의미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담배에 대한 기호 자체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담배는…… 하나의 매개이다.
담배를 끊는 방법은 있는가?
담배를 끊기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은, 사르트르가 썼듯이 담배와 세상을 굳게 결합하고 있는 그 상징의 끈을 잘라버리는 일이다. 즉 그 단단한 결정체를 해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연극이나 어떤 풍경 혹은 한 권의 책 따위를 파이프를 물지 않은 채 바라본다 하더라도 그것들로부터 하나도 잃을 게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즉 나는 담배라는 희생 제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러한 사물들을 소유하기로 하였다.>
이것은 말을 바꾸면 <담배를 담배 그 자체, 즉 타고 있는 풀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고로 염주나 돌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