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하루

유진이를 보내고..

딜쿠샤 2007. 2. 20. 15:09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모두 명절이라 한뼘쯤 들떠 있을때

혼자 조용히 갔다.

 

죽어가는 사람 앞에 내가 한 일은

정수 녀석을 외롭힌 것 뿐이었다.

곁에 가보지도 않은 채

전화로만 답답함과 궁금함을 정수에게 쏟아냈다.

내 신경질을 내 불안함을 내 낭패감을 받아준 녀석에게 고맙다.

 

유진이가 출상하는 날

나는 다른 또 한 사람을 보내리라 다짐했다.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고

세월의 먼지 속에 내버려 둔다는 게

얼마간 두렵고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랴..

아무것도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

죽음처럼 인정하는 거다.

죽음은 슬프기보다 다 놓아버리는 여유를 주지 않는가.

어쩌랴...

 

이제 잊혀진다는 걸 두려워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잊는 방법을 알 듯도 하다.

 

유진아...

웃기만 하던 너의 모습은 이제 그렇게 묻어련다.

행여...

우리가 보낸 시간과 기억할 장면이라도 하나 남았다면 그걸로 족하리라.

 

김광석의 그 목소리로

그대, 잘. 가. 라.

 

 

'긴긴 하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도-오래된 기도-벽두에  (0) 2010.01.04
해넘이 & 해돋이  (0) 2009.01.01
유진아..  (0) 2007.02.16
게으름과 자살을 생각한다.  (0) 2007.02.15
휴가 그리고 <알로에 마을>  (0) 200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