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긴 하루

기도-오래된 기도-벽두에

딜쿠샤 2010. 1. 4. 17:13

오래된 기도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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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라고들 한다.

시간에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삶의 한 형태리라.

혼자 모나지 말고

무정한 내 모습 얄궂지 않게

이렇게 기도하며 맞아볼, 하루 하루다.

부디 내 기도 소리 들으사

헤매임에도 다 잊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벽두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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