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생각하기

(외)할머니에 대한 생각

딜쿠샤 2012. 3. 25. 15:27

 

북아일랜드의 한 정신의학 잡지에 실렸다는 글. 어느 할머니의 시처럼 생긴 메모 혹은 글이라고 한다. 스코틀랜드 던디 근처 양로원 병동에서 홀로 외롭게 살다가 세상을 떠난 어느 할머니의 단 하나의 유품. 양로원 간호원들에 의해 발견되어 읽혀지면서 간호원들과 전 세계 노인들을 울린 작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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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눈에는 누가 보이나요,

간호원 아가씨들.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묻고 있답니다.

당신들은 저를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나요.

저는

그다지 현명하지도 않고

성질머리는 괴팍하고

눈초리마저도 흐리멍텅한 할망구일 테지요.

먹을 때 칠칠맞게 음식을 흘리기나 하고

당신들이 큰 소리로 나에게

"한번 노력이라도 해봐욧!"

소리 질러도 아무런 대꾸도 못하는 노인네.

당신들의 보살핌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것 같고

늘 양말 한 짝과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답답한 노인네.

목욕을 하라면 하고

밥을 먹으라면 먹고...

좋든 싫든 당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릴없이 나날만 보내는 무능한 노인네.

그게 바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나"인가요.

그게 당신들 눈에 비쳐지는 "나"인가요.

그렇다면 눈을 떠보세요.

그리고 제발

나를 한 번만 제대로 바라봐 주세요.

이렇게 여기 가만히 앉아서

분부대로 고분고분

음식을 씹어 넘기는 제가

과연 누구인가를 말해 줄께요.

저는 열살짜리 어린 소녀였답니다.

사랑스런 엄마와 아빠 그리고

오빠, 언니, 동생들도 있었지요.

저는 방년 열여섯의 처녀였답니다.

두 팔에 날개를 달고

이제나 저제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기 위해

밤마다 꿈 속을 날아다녔던.

저는 스무살의 꽃다운 신부였네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면서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 있던

아름다운 신부였답니다.

그러던 제가 어느새 스물다섯이 되었을 땐

아이를 품에 안고

포근한 안식처가 되고 보살핌을 주는

엄마가 되어 있었답니다.

어느새 서른이 되었을 때 보니

아이들은 훌쩍 커버렸고

제 품에만 안겨 있지 않았답니다.

마흔살이 되니

아이들이 다 자라 집을 떠났어요.

하지만 남편이 곁에 있었기에

아이들 그리움에 눈물로 지새우지만은 않았답니다.

쉰살이 되자 다시금

제 무릎 위에 아가들이 앉아 있었네요.

사랑스런 손주들과 나,

난 행복한 할머니였습니다.

암울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남편이 죽었거든요.

홀로 살아갈 미래가

두려움에 저를 떨게 하고 있었네요.

제 아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을 키우느라

정신들이 없답니다.

난 젊은 시절 내 자식들에게 퍼부었던 그 사랑을

또렷이 기억하지요.

어느새 노파가 되어버렸네요.

세월은 참으로 잔인하네요.

노인을 바보로 만드니까요.

몸은 쇠약해져 가고

우아했던 기품과 정열은 저를 떠나버렸어요.

한 때 힘차게 박동하던 내 심장 자리에

이젠 돌덩이가 자리 잡았네요.

하지만 아세요?

제 늙어버린 몸뚱이 안에 아직도

16세 처녀가 살고 있음을요.

그리고 이따금은

쪼그라든 제 심장이 콩콩대기도 한다는 것을요.

젊은 날들의 기쁨을 기억 해요.

젊은 날들의 아픔도 기억 하고요.

그리고 이젠

사랑도 삶도 다시 즐겨보고 싶어요.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니

너무나 짧았고

너무나도 빨리 가버렸네요.

내가 꿈꾸며 맹세했던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서운 진리를

이젠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모두들 눈을 크게 떠보세요.

그리고 날 바라보아 주세요.

제가 괴팍한 할망구라뇨.

제발,

제대로 한번만 바라보아 주어요

'나'의 참모습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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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이런 책도 있다고 한다.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넘치는 요즘 세상에 지렇게 겹쳐놓는다.

 

 

 

 

 

 

김종락 기자, 괴팍한 우리 할머니도 한때는 꿈많던 소녀(문화일보, 2003-10-16)

                    - 장 프랑수아 샤바스 지음·변영미 그림, <할머니의 비밀>(창비, 200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1&aid=0000047661

 

 

아이들은 대체로 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나마 맞벌이하는 부모를 대신해서 아이를 기른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낫다. 그러나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가 명절 때나 한 번씩 만나는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는 낯선 시선은 젊은 부모를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노인이 비록 몸은 같은 공간에 있다 해도 삶의 경험과 정신은 접점이 없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는 따위의 당위를 넘어, 이들의 가슴이 서로 맞닿는 지점은 없는 것일까.

1967년생인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의 배경은 우리보다 가족 전통이 옅은 미국이다. 캐나다 국경 인근의 북부 몬태나주에서 자라고, 살아온 88세의 할머니가 뉴욕의 손자네 집으로 여생을 보내러 온다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은 할머니의 증손자로, 할머니와 같은 방을 써야 하는 열두 살의 미키. 할머니는 성격이 여간 고집 세고 괴팍한 것이 아니다.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부엌에서 달그닥거리며 다른 사람의 잠을 방해하고, 저녁에는 시끄럽다며 텔레비전도 못 보게 한다. 90이 가까운 나이 치고는 놀랍도록 활력이 넘치는 할머니, 미키는 이런 할머니와 계속 살아갈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뜩하다.

그러던 어느 날 미키는 할머니의 가방에서 할머니가 열 살 때부터 최근까지 써온 일기장을 발견하고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다. 할머니 페이스 그린이 10대 때 이야기가 주로 나오는 일기의 시대적 배경은 미국이 금주법을 시행하던 1920년대. 시카고에서 구두공장을 하며 부유하게 살던 그린의 아버지는 부도를 내고 북부 몬태나의 숲속으로 이사한다. 처음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 지 몰랐던 그린은 아버지가 숲에서 하는 일이 불법 밀주제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린은 평소 자신들에게 인자하기만 한 아버지가 동업자와 함께 상납을 요구하는 갱들을 쏘아 죽이는 살인 장면까지 목격하고 극심한 심적 갈등을 겪는데….

이런 일기를 읽으며 괴팍한 할머니의 겉모습 뒤에 감춰진 소녀 시절의 할머니를 새롭게 발견하는 미키. 할머니와 증손자는 일기 속의 이야기와 현실이 교차하는 가운데 차차 친구처럼 가깝게 다가선다.

책은 할머니와 증손자의 만남을 이야기하면서도, 아이에게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일기와 현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지금은 이렇게 늙고 괴팍해진 할머니에게도 소녀 시절이 있었고, 이를 일기와 가슴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래, 아이와 아이를 지켜보는 할머니가 서로 다가서는 과정을 재미있게 그려냈을 뿐이다.

1920년대 미국을 그리며 역사소설로서의 의미도 가지는 책은 이와 함께, 어린이 책에 흔한 선악의 도식도 거부한다. 할머니의 부모와 동업자는 불법밀주를 제조하고 사람까지 죽이는 범법자이지만 그렇다고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더없이 좋은 사람이 한편으로는 나쁜 짓을 할 수 있다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작가는 동화를 읽는 아이들이 어른의 지레짐작과는 달리, 세상을 복합성 속에서 진지하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면서 아이가, 할머니나 할아버지, 혹은 마치 먼 세상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을 가슴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넌지시, 그러나 감동스럽게 전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1998년 ‘땀땀상’을 비롯, 무려 14개의 상을 받았다고 책을 옮긴 김주열씨는 전한다. 땀땀상은 프랑스 각 도시의 15개 학급 어린이들이 심사에 참여하는 상인데, 이 작품은 모든 도시의 어린이들로부터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괴팍한 할머니-북아일랜드의 한 정신의학 잡.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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