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구경 가자시더니>
최정례
벚꽃나무 머리 풀어 구름에 얹고
귀를 아프게 여네요
하염없이 떠나가네요
부신 햇빛 속 벌떼들 아우성
내 귀 속이 다 타는 듯하네요
무슨 말씀이었던지
이제야 아네요
세상의 그런 말씀들은 꽃나무 아래 서면
모두
부신 헛말씀이 되는 줄도 이제야 아네요
그 무슨 헛말씀이라도 빌려
멀리 떠메어져 가고 싶은 사람들
벚꽃나무 아래 서보네요
지금 이 봄 어딘가에서
꽃구경 가자고 또 누군가를 조르실 당신
여기 벚꽃나무 꽃잎들이 부서지게 웃으며
다 듣네요
헛말씀 헛마음으로 듣네요
혼자 꽃나무 아래 꽃매나 맞으려네요
달디단 쓰디쓴 그런 말씀
저기 구름이 떠메고 가네요
시집 <내 귓속의 장대나무 숲>(민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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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흥얼거리면서 오르내리던 길가,
머리 위의 그 화려했던 벚꽃들도 이젠 푸른색 잎으로 변했구나.
참 그날 바람타고 날리던 꽃잎눈을 맞으면서 멍하게 서 있었지.
그날 이후 하늘을 올려다 보지 못했구나.
이렇게 옮겨 읽으면서 이 시 속에 놓여진 허무도 상실도, 그 화려한 꽃은 사라졌지만,
새파란 잎으로 다시 화했구나. '달디단 쓰디쓴 말씀'들 꽃이되고 잎이 되었구나.
벚꽃진 캠퍼스를 채우고 있는
화려한 진달래, 철쭉들 사이로 하얀 사과꽃이 보인다.
이 늦봄엔 사과밭 그 속으로 가고 싶다, 하얀 달 아래 하얀 꿈꾸러 가고 싶다.
2000.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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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시 옮겨놓고 보니
6년전이나 지금이나 한치도 변한 게 없다.
다만 그 꿈꾸러 가고 싶은 마음이 그대로인지 자신이 없다.
뒤돌아 보는 일은 이렇게 낭패감과 때로는 위로로 울렁거린다.
고맙다. 이렇게 다시 있어줘서...
더 세월이 지나고 다시 너를 어떻게 만날 지
자못 궁금하고 벌써 아프기까지 하다.
그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은
내 자신에게 바라는 한 가지 사라짐의 흔적일까?
2006.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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